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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의 여인

전통적인 관념에서는 바둑이나 장기는 주로 남성의 일로 여겨졌으며 옛 문헌에서도 여성 기사의 기록은 매우 드뭅니다. 일부 여성만이 황제를 모시거나 국수를 이긴 특별한 사례로 이름을 남겼을 뿐이기 때문에 여성이 바둑에 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로부터 바둑을 두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으며 시문과 회화 속에는 후궁, 규방, 또는 교방(教坊:당대이후 궁중에 존재했던 음악·무용·배우·잡희(雜戱) 따위를 관장하던 곳)의 여성들이 남성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든 혹은 스스로의 마음을 수양하고 즐기기 위해서 바둑을 두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주제는 세 점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작품을 중심으로 옛 여성들이 문인처럼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에 몰두하며 우아한 기품을 드러낸 모습을 조명합니다. 이를 통해 옛 여성들이 바둑 놀이에 몰입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려냅니다. 비록 그녀들의 기량이나 업적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고요한 바둑판 위에서 묵묵히 이어졌던 수 싸움 속에는 그녀들의 치밀한 사고와 넓은 안목이 담겨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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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대 남당이라고 전해지는  주문구(周文矩)의  연당에서 바둑 두고 낚시하는 사녀도(仕女圖)  족자
    • 오대 남당이라고 전해지는  주문구(周文矩)의  연당에서 바둑 두고 낚시하는 사녀도(仕女圖)  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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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 남당이라고 전해지는  주문구(周文矩)의  연당에서 바둑 두고 낚시하는 사녀도(仕女圖)  족자_預覽圖
    오대 남당이라고 전해지는 주문구(周文矩)의 연당에서 바둑 두고 낚시하는 사녀도(仕女圖) 족자
    • 195.1x98
    • 고화(故畫)001777

    이 그림은 원래 오대 시기의 여류 화가 주문구(10세기 활동)의 작품으로 전해졌으나 화풍을 바탕으로 볼 때 1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속에는 얇은 겉옷을 걸친 부인들이 연못가에서 부채질하며 연꽃을 감상하거나, 난간에 기대어 낚시를 하고, 탁자에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우아한 여름날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가는 바둑에 대해 일정한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의 배치는 실제 기보와 일치하며 대국 중 바둑돌을 담는 뚜껑에 잡은 돌을 보관하는 모습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일반적인 방식과 같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건축, 복식, 기물의 세부 묘사 역시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감상할수록 새롭게 발견되는 요소들이 많으며 고대 바둑 문화의 시각적 자료로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아울러, 과거 여성들이 바둑 문화에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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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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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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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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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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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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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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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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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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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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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 정관붕(丁觀鵬) 구영(仇英)의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를 본 뜬 그림 두루마리
    • 34.5x675.4
    • 고화(故畫)001047

    이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은 궁정 화가 정관붕(약 1708–1771)이 건륭제(재위 1735–1796)의 명을 받아 궁중에 소장된 구영(약 1494–1552)의 백묘본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현, 랴오닝성박물관 소장)을 모사한 작품입니다. 정관붕은 원작의 구도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담백하고 세련된 채색을 더하고 청대 궁궐의 건축 양식과 가구 배치를 조화롭게 반영하여 건륭제가 선호했던 고풍 속의 새로운 모습을 구현하였습니다. 그림 마지막에 호숫가의 육각형 정자에서 여인들이 앉아 쌍륙(雙陸)을 두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쌍륙은 명청대(약14-20세기)에 유행했던 전통 내기 놀이입니다. 하지만 청대의 도박을 금하는 정책으로 인해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이 그림은 그러한 사라져 가는 오락 문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국보 집중 조명 – 바둑 두는 여성 편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판본 비교

'한나라 궁정의 봄날 아침'은 명청시대 사녀화(仕女畫) 중에 후세의 모범이 된 주제로 후궁 여성들의 다채롭고 섬세한 일상생활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주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명대의 구영(仇英, 약 1494–1552)이 그린 것으로 구성은 치밀하고 필법은 정교하여 후대 화가들이 앞다투어 모방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청대(1644–1912)에 이르러 건륭제(재위 1736–1795)는 여러 차례 궁정 화가들에게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습니다. 청대 작품에는 청나라 궁궐 건축과 기물, 각종 활동이 더해졌으며 화면은 더욱 길고 채색은 더욱 화려하며 시점도 더 높아졌습니다. 구영이 여인의 활동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청대 궁정본은 궁정의 웅장하고 화려함과 의장(儀仗)의 기세를 더 강조하였습니다. 202, 208, 212번 전시실에서는 소장품 가운데 세 폭의 뛰어난 '한나라 궁정의 봄날 아침'을 선보이며 원본 크기의 부분 비교 이미지도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각 판본이 구성이나 색채, 세부 묘사에서 무엇이 다른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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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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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명 구영(仇英)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두루마리
    • 30.6x574.1
    • 고화(故畫)001038
    • 국보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은 구영(仇英, 약 1494~1552)의 사녀화(仕女畫) 대표작으로 명청 시대 화가들이 앞다투어 모사한 고전이며 본원이 소장한 동일 주제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구영은 '명 사대가' 중 한 사람으로, 직업 화가의 정교함과 문인화의 우아함을 겸비한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옛날 후궁들이 봄날 아침 궁중 회랑과 정원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여인들은 꽃구경, 풀싸움, 춤과 음악 등 여흥 활동은 물론 몸단장, 자수, 육아와 같은 여성 활동에 종사하며 거문고, 바둑, 서화와 골동 감상과 같은 문인적 고상한 일에도 참여하고 있어 궁중의 풍부하고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화면의 구성 요소는 〈비단 다듬는 그림〉, 〈궁중도〉, 〈밤에 열린 연회 그림〉 등 고전적인 사녀화에서 차용되었으며 당나라(618-907) 시기의 궁중 시가에 나타나는 섬세한 후궁 생활 묘사와도 상응합니다. 이후 청나라 궁중본과 비교할 때 구영의 이 작품은 궁궐 건축의 화려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여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입니다. 이 작품에는 구영의 낙관이 있으며 본디 명대의 서화 감식가이자 수장가인 항원변(項元汴, 1525-1590)의 소장품으로 항씨의 소장 번호와 가격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항씨의 소장인과 청나라 궁정의 소장인이 함께 찍혀 있습니다.

깊은 궁궐 속의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

가장 널리 알려진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은 명대 화가 구영(仇英, 약 1494-1552)의 작품으로 이후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은 유행하는 그림의 주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륭제(재위 1735–1796) 또한 여러 차례 궁정 화가들에게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도록 명하였고 더 많은 청대 궁궐 건축, 정원, 가구, 기물과 활동들이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속에 융합되어 새롭게 청나라 궁정 버전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물론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과 관련된 활동이나 장식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대 궁정 버전은 화폭의 폭과 길이가 매우 길어 사예(四藝)와 관련된 장면은 한 번 이상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둑판을 모두 다 찾으셨나요?

    •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_預覽圖
    명 가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그림 사발
    • 자기
    • 높이 17.6, 입지름 39.8
    • 贈瓷000560

    이 대형 청화백자 아이들 놀이 무늬 사발은 명나라 가정 연간(1522–1566)에 제작된 것으로 원래는 중화민국 주베를린 대사관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었으나 이후 외교부를 통해 국립고궁박물원에 기증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사발 외벽에는 모두 16명의 아이가 묘사되어 있으며 어떤 아이는 말을 타고, 어떤 아이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꼭두각시극을 공연하고, 나비를 쫓는 등 생기 넘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발 안쪽 바닥에는 두 아이가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데 그 표정이 무척 진지합니다. 명대(1368–1644)에는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의 사예(四藝)가 성행하였으며 아이들이 이를 익히는 장면은 도자기 장식에서도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동진(東晉)의 장화(張華, 232–300)가 지은 《박물지(博物志)》에는 요임금은 심신을 수양을 위해 순임금이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 바둑을 창안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사람들은 바둑이 성품을 기르고 지혜를 계발해 주는 것이라 여겼음을 보여 줍니다. 이 대형 사발은 그러한 교양과 지혜를 담아낸 아름다운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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