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와 신선
옛사람들은 바둑에 종교적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기 불교 계율에서는 신도들이 바둑을 두거나 관전하는 것을 명문으로 금지하였으며, 바둑이 수행을 방해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위진남북조 시기부터 불교의 바둑에 대한 태도는 점차 변화하였고 당송 시대에는 고승들이 바둑에 빗대어 설법하는 풍조가 나타나 바둑 승려에 관한 많은 시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본 전시장은 이와 같은 불교의 바둑에 대한 태도가 배척에서 수용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며 바둑이 수행과 포교에서 담당한 다양한 역할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 명 선덕 5년 필사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1권
- 명나라 선덕 5년 금가루로 쓴 필사본
- 접은 면 하나:30.7x14.5
- 고불(故佛)000258-9
『대반열반경』은 "모든 중생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전하며, 대승불교의 근본 경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명나라 선종(재위 1425–1435)이 1430년에 하달한 명령에 따라 제작된 중요한 판본입니다. 경문은 거울처럼 검고 윤기 나는 양뇌전(羊腦箋)에 금니(泥金)로 정성껏 필사되어 매우 귀중합니다. 본원은 총 40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번에 전시되는 것은 제11권으로, 경전의 표지와 경문 첫머리의 삽화, 그리고 「성행품(聖行品)」의 경문 단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행(聖行)'은 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행법 가운데 하나로, 출가 수행과 계율을 엄격히 지킬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바둑·수렵·투호와 같은 오락을 단지 웃고 즐기는 일로 간주하며 신자가 참여하지 않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기 불교가 오락 활동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도교와 신선 문화에서 오묘하고 신비로운 바둑은 수양과 수행을 위한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동진 시기부터 바둑은 신비한 전설과 결합되기 시작하여, '가산(柯山)에서 바둑 두는 신선을 본 이야기', '한 판에 천 년'과 같은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가 전해졌으며, 전설과 관련된 명산과 절경 또한 함께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신선이 바둑을 두는 도상은 문인의 '사예(四藝)' 이미지와 결합되었고, 장수를 기원하는 상서로운 의미도 더해져 바둑이 신령하고 도에 통달하며 장생을 상징하는 문화적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 청 손호(孫祜) 만수도(萬壽圖) 화책 – 수옹이 바둑을 두다, 수옹이 거문고를 타다, 수옹이 서책을 펼치다, 수옹이 그림을 감상하다
- 24.7x24.4
- 고화(故畫)003372-1~4
『만수도(萬壽圖)』 화첩은 총 12폭으로, 옹정 및 건륭 연간에 활약한 청나라 궁정 화가 손호(18세기 전반 활동)가 그린 작품입니다. 손호는 인물화, 산수화, 계화(界畫)에 능했으며 궁중에서 청대 원본 『청명상하도』의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 화첩에서 그는 공필채색 기법을 사용하여, 백발과 흰 수염이 인상적인 신선들이 다양한 선도 신앙 및 문인 생활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 '만수(萬壽)'는 옛날 신하들이 황제나 황후의 생일을 기릴 때 사용한 존칭으로, 신선들의 장수의 이미지와 본 화첩 속 신선들이 영지를 채집하거나, 복숭아를 바치고, 단약을 제련하는 모습은 장수를 축복하는 의미를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네 폭에는 신선들이 거문고를 타고 음악을 감상하거나,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함께 시문을 읽고, 여럿이 그림을 감상하며 토론하는 장면이 담겨 있어, 문인의 사예(四藝)를 신선의 고상한 취미로 승화시킨 모습을 보여 줍니다.
- A Collection of Paintings of Fishing and Farming Scholars (Volume Two): Watching Go at Mount Ke Anonymous, Qing Dynasty Album leaf
- 16.9x40.5
- 고화(故畫)003607-1
'가산에서 바둑 두는 것을 본다' 는 이야기는 육조(220–589) 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를 쓴 소설 『술이기(述異記)』에 수록된 것으로 진대(266–420)의 나무꾼 왕질(王質)이 산속에 들어가 선동(仙童)들이 바둑 두는 모습을 보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도끼 자루가 썩고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는 전설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바둑을 뜻하는 다른 이름으로 '난가(爛柯)'가 생겨났습니다. 이 그림은 『어부·나무꾼·농부·학자를 그린 그림』에서 발췌한 것으로, 본 원은 두 화첩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화첩은 문장에 능한 신하이자 화가가 그린 역사 속 어부, 나무꾼, 농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은둔적 삶에 대한 동경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화폭 옆에 쓰인 시에는 '면녕(綿寧)'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는 도광제(재위 1820–1850)가 황태자 시절에 남긴 글입니다.
- 청 동방달(董邦達) 묵묘주림(墨妙珠林)(사(巳)) 화첩 – 익기암(奕棋巖)
- 62x42.2
- 고화(故畫)003642-24
『묵묘주림』은 건륭제 초기에 제작된 대형 화첩으로 총 12책, 각 책마다 24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명의 화가가 절기, 인문, 산천 등 다양한 주제를 나누어 그렸으며 각 책의 제목은 지지(地支)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사(巳)」책은 동방달(1699–1769)이 1746년에 그린 것으로, 쟝시성(江西省) 용호산(龍虎山)의 '이십사암경(二十四巖景)'을 주제로 하여, 현지의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익기암」은 바위 모양이 마치 신선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닮아 이름 붙여진 것입니다. 동방달은 세밀한 필치로 겹겹이 이어지는 산세 속에 놓인 조그마한 바둑판을 묘사하였는데 마치 세상이 멈추고 바둑판 속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 듯한 느낌을 주며 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뜻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왼편의 제발문은 계황(稽璜, 1711–1794)이 쓴 것으로, 바위의 명칭과 관련된 신선의 전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