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과 품격있는 선비
바둑은 당나라부터 문인의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의 '사예(四藝)'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문인 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습니다. 바둑은 문인 간에 우정을 나누는 중요한 매개였기 때문에 고상한 모임인 아집(雅集) 도상에는 대국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바둑은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소일거리로 역대 문인들이 바둑에 빠져 잠과 식사를 잊고 글씨나 그림, 차와 먹을 내기로 삼는 '고상한 내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바둑은 감회를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여 대국을 글로 기록하면서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 우정을 기념하고 좌절 속에서도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드러내며 정국의 혼란과 인생의 무상함을 읊기도 하였습니다. 옛사람들이 바둑을 주제로 남긴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도 마치 그들의 세계에 들어간 듯, 함께 둘러앉아 바둑을 두는 즐거움과 수를 놓는 사이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 명대 구영(仇英)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십팔학사가 영주(瀛洲)에 오른 이야기를 그린 그림 족자
- 223x102
- 고화(故畫)000487
이 그림은 명대 화가 사대가 중 한 사람으로 전해지는 구영(약 1494-1552)의 작품으로, '십팔학사(十八學士)'를 그린 것입니다. 이 주제는 당 태종(재위 626-649)이 열여덟 명의 어진 신하들의 보좌를 받아 태평성세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후대에는 학사들이 신선의 산인 영주에 오른다는 형상으로 순조로운 출세를 비유하는 매우 인기 있는 고전적인 화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정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본 그림에서는 청산과 푸른 절벽, 구름이 자욱한 신선의 세계로 그려졌습니다. 그림 속에서 바둑을 두는 문인의 자세는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으나 바둑판의 묘사는 비교적 간략하여 백돌은 아예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 명 황표(黃彪) 아홉 노인 그림 두루마리
- 27.2x193
- 고화(故畫)001639
당대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은퇴 후, 다른 여덟 명의 나이가 많은 명사들과 함께 뤄양(洛陽) 향산(香山)에서 시모임 조직하였으며 세상에서는 이들을 '향산구로'(香山九老)라 불렀습니다. 이 모임은 후대에 고상한 모임인 아집(雅集)의 화제로 널리 모방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명대 쑤저우(蘇州)의 화가 황표(1522~1594년 이후)가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던 송대본 〈아홉 노인 그림〉을 임모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림 속에서는 노인들이 소나무와 대나무,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두루마리를 펼쳐 시를 읊고, 꽃을 머리에 꽂은 채 춤을 추거나, 둘러앉아 바둑을 두는 등 각 인물의 자세가 사랑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에 적힌 이름과 글씨에 따르면 대국을 벌이는 인물은 백거이와 유진(劉真, 생몰년 미상)으로 보입니다. 바둑판 위의 선 간격은 다소 일정하지 않지만, 가로세로 모두 19줄로 구성되어 있어 정식 19줄 바둑판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흑과 백 중 어느 쪽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어 그날의 대국 상황을 알 수는 없습니다.
- 송 황정견(黃庭堅) 범지의 시를 쓴 글씨 서첩
- 한 면:29.8x28.4
- 증첩(贈帖)000058
1100년, 북송의 서예가 황정견(1045-1105)은 쓰촨성 칭선현(青神縣)으로 가는 길에 니우커우좡(牛口莊)에 사는 요치평(廖致平, 자는 양정(養正), 11세기 후반 활동)의 집에 들렀습니다. 그는 밤에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며, 투호(投壺, 화살 막대를 술병에 던져 넣는 놀이)를 즐기고, 흥이 오르자 시와 제발을 한 권에 써내려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제발 부분만 남아 있으며, 그것이 바로 중국국가박물관에 소장된 《청의강제명권(青衣江題名卷)》으로 황정견의 현존 서예 작품 중 가장 글씨 크기가 큰 묵적입니다. 본 작품은 명대 말기의 모작으로 당시 쑤저우(蘇州) 지역에서 황정견의 서체를 선호하던 풍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 청 전풍(錢灃) 예서로 소식의 시를 쓴 걸작 두루마리 두루마리
- 28.2x297.2
- 증서(贈書)000179
이 힘차고도 웅건한 서예 작품은 청대 서예가 전풍(錢灃, 17401795)의 필적으로, 소식(蘇軾, 10371101)의 시 여러 수를 옮긴 것입니다. 그 중 한 수는 이 북송 문호가 친구와 바둑을 두며 나눈 깊은 우정을 담고 있습니다. 소식은 한때 유배되어 외딴 하이난 담주(儋州)로 좌천되었고,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현지 관리인 장중(張中, 생몰년 미상)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주 술을 나누며 바둑을 두었고 바둑으로 시름을 달래곤 했습니다. 장중은 소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거처를 제공했으며 그 결과 안타깝게도 파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별을 앞두고 소식은 세 편의 송별시를 남겼으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그 가운데 한 편입니다. 시에는 벗과 함께 밤새 바둑을 두던 즐거운 나날을 회상하며 구절마다 아쉬워하는 이별의 정이 묻어납니다.
- 명 누견(婁堅) 오언고시(古詩) 서예 두루마리
- 27.7x272.6
- 고서(故書)000131
- 중요 고문화재
명말 '가정사선생(嘉定四先生)' 중 한 사람인 누견(1567-1631)은 시문과 서예로 명성을 떨쳤으며 바둑 또한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이 작품에 적힌 오언시(五言詩)는 누견의 시집에 수록된 것으로 책에는 다음과 같은 작은 주석이 덧붙어 있습니다. 누견은 가까운 친구였던 순중도형(純中道兄, 생몰년 미상)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기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자주 바둑을 두었고 이 시를 지어 바둑을 인생의 비유로 삼았습니다. 그는 친구가 바둑판의 승부를 꿰뚫어 보듯이 생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초탈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시에 담았습니다. 전체 글씨는 필묵이 자유분방하며 풍성하고 아름답게 전개되며 송대의 소식(蘇軾, 10371101)과 미불(米芾, 10511108)의 서풍을 배운 흔적이 배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