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과 장수, 재상
바둑은 본래 전쟁의 형식을 따라서 발명된 놀이입니다. 마음의 지혜와 전략을 단련할 수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귀족과 장군들이 즐겨 찾는 두뇌훈련 활동이었습니다. 본 단원에서는 다양한 바둑 도구들을 전시하여, 황실의 생활 미학과 정교하고 다채로운 바둑의 물질문화를 보여줍니다. 〈명황(明皇)이 바둑을 두는 그림〉, 〈송태조 좌상〉, 〈명태조 어필〉 등의 작품은 역대 황제들이 사신이나 귀빈, 공훈이 큰 신하들과 바둑을 두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바둑이 역대 궁중에서 유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통치자의 정책이 당시 바둑 풍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부 전시품에서는 왕과 제후, 장군과 재상들이 바둑을 둘 때 산, 호수, 누각을 내기로 거는 호화로운 내기의 풍조가 드러나며 이는 문인들 사이에서 문방 기물을 걸고 겨루던 고상한 내기 취향과 강렬한 대비를 이룹니다.
- 오대 남당 주문구(周文矩) 그렸다고 전하는 명황(明皇)이 바둑을 두는 그림 두루마리
- 32.8x134.5cm
- 고화(故畫)000981
당 명황(明皇, 당 현종, 재위 685–762)은 바둑을 매우 즐겼으며, 즉위 전에는 일본에서 온 견당승 변정(辨正)을 상대로 대국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바둑 기사 왕적신(王積薪)을 '기대조(棋待詔)'로 임명하고 바둑을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림 속에는 아직 착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바둑판 외에도, 광대 분장을 한 배우와 마상 폴로 경기에서 쓰이는 채찍이 함께 등장하여, 황제가 즐기던 다양한 오락 취미를 보여줍니다. 이는 곧 '쾌락에 빠지고 정사를 게을리하면 반드시 나라가 기울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왼쪽 위에는 건륭 황제(재위 1736–1795)가 쓴 제시가 남아 있으며, 양귀비(719–756)가 개를 풀어 대국을 방해한 고사를 인용해, 황제의 방탕이 국정을 그르쳤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후대 사람들이 제왕의 향락과 정치적 균형 상실에 대해 성찰했던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예전에는 주문구의 작품으로 전해졌으나, 실제로는 원대 화가 임인발(任仁發, 1254–1327)의 화풍에 더 가깝습니다.
- 명 왕정눌(汪廷訥) 좌은재(坐隱齋) 선생이 직접 편찬한 기보 전집
- 명 서림(書林) 왕씨(王氏) 간행본
- 서책 한 쪽:31.7x27.8
- 국가도서관(國家圖書館)307.7 06815
이 책은 원래 원나라 시기의 『현현기경(玄玄棋經)』이었으나, 후대에 누군가가 이를 조작하여 명나라 시기의 바둑을 좋아하던 휘주(徽州) 출신 유학 상인 왕정눌(汪廷訥, 1573–1619)의 저서인 것처럼 꾸미고 서명을 고쳐 붙였습니다. 책의 내용은 주로 바둑의 형세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전시된 「당명황 유월궁(唐明皇遊月宮)」은 유명한 바둑 난제인 '진롱기국(珍瓏棋局)'입니다. 여기서 '백선살흑(白先殺黑)'은 흑돌을 잡기 위해 백돌이 먼저 두는 수순을 뜻합니다. 치밀하게 짜인 수순을 따라 진행하면, 바둑판 전체에 흑과 백 돌이 무늬처럼 배치되는데, 이는 마치 당명황(唐明皇)과 도사가 월궁을 유람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대국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명황이 바둑을 즐긴 이미지가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명나라 주원장(朱元璋) 대장군 위국공 겸 태자태부 서달(徐達)에게 내린 칙서
- 명 태조 어필책 (1)
- 37.8x35.3
- 중서(中書)000014-11
책의 오른쪽 면에는 명 태조 주원장(재위 1368–1398)의 주사(硃砂)로 쓴 행초서 명령문이, 왼쪽 면에는 이를 해석한 해서로 쓴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내용은 태조가 제사 후의 공물을 서달(1332–1385)에게 하사하여 함께 나누어 먹게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서달은 정치와 군사 양면에서 태조에게 충성을 다한 동지였으며, 두 사람은 사돈 관계이자 바둑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이 칙령은 태조가 서달을 얼마나 신임하고 중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 청 녹색 및 청색 유리 바둑알과 흑칠 금채 바둑알 통
- 진귀한 완상품
- 바둑알: 직경 1.7, 높이 0.7 ; 바둑알 통: 5x4.5x5.9
- 고잡(故雜)001677, 001680, 000523
바둑은 바둑알이 흑색과 백색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속칭 '흑백' 또는 '오로(烏鷺)'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바둑알의 색상은 다양하며, 본원이 소장한 이 흑칠에 금색 장식을 더한 원형 바닥의 네모난 상자에 담겨 있는 녹색과 청색 유리 바둑알 세트는 그 좋은 예입니다. 건륭제(재위 1736–1795)는 열여섯 가지 색상의 유리 바둑알을 제작하도록 명하였으며, 본원은 그 가운데 네 가지 색상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세트는 그 중 두 가지이며, 나머지 적색과 황색 유리 바둑알은 현재 「귀족의 영화」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유리 바둑알은 한쪽은 평평하고 다른 한쪽은 둥글게 볼록한 형태로 맑고 투명하며 손에 쥐었을 때 묵직한 감촉이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명나라 시기부터 유행한 양식입니다. 원나라와 현대의 바둑알은 양면이 모두 둥글게 볼록한 형태로, 바둑알의 형태와 색상은 시대의 유행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보여 줍니다.
- 청 비단으로 장식한 바둑·장기 겸용 바둑판
- 진귀한 완상품
- 32x31.7
- 고잡(故雜)000683
이 양면 겸용 접이식 바둑판은 얇은 나무 바탕에 흰 비단을 감싼 뒤, 먹으로 격자선을 그려 만든 것입니다. 펼치면 한쪽 면에서는 바둑을, 다른 한쪽 면에서는 장기를 둘 수 있으며, 접어서 보관할 수 있어 휴대와 수납에 용이합니다. 서한 이전에는 세로와 가로가 각각 11줄 또는 13줄인 바둑판이 사용되었고, 동한부터는 17줄로 확장된 판면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이 겸용 바둑판은 육조 시기부터 널리 사용된 19줄 바둑판 형식입니다. 이 바둑판은 다보격(多寶格) 골동품 상자의 작은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서랍 안에 남아 있는 목록에 따르면, 원래는 옥으로 만든 바둑알과 장기 말이 함께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송대라고 전해지는 격사(緙絲) 사안(謝安)의 별장 내기 그림
- 59.5x101.3
- 고사(故絲) 000131
직물 공예인 격사는 화려하고 정교한 비단 직조 기법으로 당대에 시작되어 송·명대에 특히 융성하였으며 주로 역사적 고사나 전설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본 작품은 『진서열전(晉書列傳)』에 실린 동진의 유명한 재상 사안(320–385)이 (화면 오른쪽의 나막신을 신은 인물) 비수(淝水) 전투 당시 전진의 부견(苻堅, 338–385)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비록 병력이 적어 상대를 이기기 어려운 열세에 놓이고 전력 차가 현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군을 이끌던 조카 사현(謝玄, 343–388)과 함께 화려한 꽃과 새가 있는 정원에서 태연히 바둑을 두면서 바둑의 내기로 동산(東山)의 별장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표현하였습니다. 그 후 전투에서 승전보가 왼쪽에서 전해졌지만, 사안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끝까지 바둑을 두었으며 문턱을 넘을 때에야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나막신을 부러뜨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송대의 작품으로 전해지나, 인물의 형상은 명대 회화와 더 가까운 양식을 보입니다. 바둑판 위에 배치된 흑백 바둑알의 배열 또한 승부의 암시를 은밀히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