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文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
「교화와 윤리도덕을 돕는 것」이라는 무거운 사명과 별개로 우리들이 그림 속에 머무르면서 문학이나 희곡, 소설의 스토리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상상하거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마도 이야기 그림의 근본적인 매력일 것입니다. 〈문희(文姬)가 한나라로 돌아가는 이야기〉안의 민족적인 정체성과 혈육의 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애처로운 슬픔과 아쉬움, 〈서상기(西廂記)〉안의 사랑이 처음 시작될 때의 설레임과 모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속의 재능을 발휘하기 어렵고 없고 자신을 굽힐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해방감…. 이러한 여러가지 스토리와 문장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전환시킨 화가는 이야기에 즐겁게 보면서 감상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이해의 관점을 제공하였습니다.
- 송 이당(李唐) 문희(文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
- 비단에 채색, 책
- 전체 크기: 세로 59.6cm, 가로 96.4cm
- 고화(故畫) 001114-1 ~ 001114-18
- 중요 유물
이 화첩은 동한 시대의 재능 있는 여성인 채문희(蔡文姬, 162-229)의 고난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오랑캐에게 포로로 잡혀 남흉노(南匈奴)의 좌현왕(左賢王)에게 시집가게 되며, 두 아들을 낳습니다. 12년 후, 조조(曹操, 155-220)가 사신을 보내 그녀를 한나라 땅으로 되찾아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녀는 호인들의 악기 소리를 듣고 곡을 작곡하고 자신의 생애와 관련된 시를 더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입니다. 채문희의 이야기는 매우 인기가 있어 여러 소설과 연극으로 발전하였고, 《호가십팔박》은 역대 문인들에 의해 다시 쓰였습니다.
이 화첩 상단에는 당대의 유상(劉商, 약 727-805)의 판본이 필사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이에 상응하는 그림을 배치하여 「그림과 글이 평행」을 이루는 연속 이야기 그림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호가십팔박》은 단순히 충성과 효도를 가르치는 작품이 아니라, 채문희의 선택이 상당히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극적인 요소로 많은 관객의 동정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화가가 이야기의 장면과 인물의 감정을 그리는 데 흥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이는 송나라와 금나라가 대치하던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촉발된 작품으로, 감상하는 재미가 무궁무진하며 오늘날의 그림 이야기책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작가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당(李唐, 약 1049-1130이후)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전해지는 작품과는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작품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지만, 섬세한 화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작은 인물들의 의상 무늬는 여전히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조금 후인 남송 궁정 화가의 작품으로 추측됩니다.
- 송 진거중(陳居中) 문희(文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
- 비단에 채색 족자
- 그림크기 세로147.4 가로107.7cm
- 고화(故畫)000849
- 국보
이당(李唐)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문희(文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이 채문희(蔡文姬)의 경험을 18장의 화첩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세로 형태의 작품인〈문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은 단지 「하나의 장면」으로 이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가가 표현한 장면은 제13장의 「이별의 슬픔」과 가깝고, 부부가 술을 마시며 작별하는 모습과 가족이 곧 이별하려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당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판본에서 사람들이 거의 울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족자로 된 버전의〈문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에서는 양탄자에 앉아 작별하는 부부가 유난히 침착합니다. 문희의 허리를 안고 있는 놓아주지 않는 작은 아들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정중하게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한족 사신과 흉노와 한나라의 호위대가 섞여 있는 장면이 있다는 것인데 연구자들은 이것이 송대의 외부 민족에 대한 입장과 외교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림 속 의복과 기물의 세밀한 묘사는 당시 북방 이민족 문화와의 밀접한 접촉과 이해를 보여줍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남송 후기 궁정 화가인 천거중(13세기 초 활동)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학자들은 12세기의 뛰어난 궁정 회화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소개─문희(文姬)가 한나라로 돌아오는 그림
동한 말년, 전란이 빈번했던 시기에 명신 채옹(蔡邕)의 딸 문희(文姬, 채염(蔡琰)이라고도 함)는 포로로 잡혀서 흉노의 좌현왕(左賢王)에게 시집을 가게 되어 북쪽에서 고통스럽고 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두 아들을 낳았고, 이민족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배로 낳고 손수 기른 아이들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족의 사신이 문희를 되찾고자 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문희는 기뻤지만 한편 어린 아이들과 이별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두 아들은 문희의 옷자락을 꽉 잡고 이별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결국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귀국한 후, 문희는 이 12년 간의 세월과 애수를 호가(胡笳)라는 악기를 통해 곡으로 표현하였고, 음악 소리에 따라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