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층사회의 힘
기층사회에서 사용한 건축 재료와 기술은 대체로 간단했지만, 설계 시에는 주로 지역의 지형과 자원을 기반으로 조정하여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토성(土城)’은 단순히 자기방어를 위한 용도뿐만 아니라, 관청에 저항하는 거점으로도 활용되었으며, 민간의 결속력과 협력 정신을 상징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는 당시 대만 사회의 다양성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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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이(大里杙) 전투도
타이완을 평정한 그림
청 건륭(乾隆) 연간 동판화다리이(大里杙)는 현재 타이중시(臺中市) 다리(大里) 구역의 옛 이름으로, 건륭제(乾隆朝) 말기 반청(反清) 지도자인 임쌍문(林爽文) 가문의 주요 거점으로 이곳에는 자기 방어를 위해 토성이 축조되었습니다. 청군대의 장군 복강안(福康安) 등이 이끄는 군대가 공격을 준비할 당시, 이 지역을 관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방어 상황이 파악되었습니다. "동쪽은 큰 산에 의지하고, 남쪽은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토성을 쌓고 대포를 촘촘히 배치하였는데, 내부에는 두 겹의 대나무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성 밖에는 중첩된 해자와 방벽이 있어 방어가 매우 견고하다." 또한, 내부에는 대량의 물자가 비축되어 있었습니다. 〈다리이의 전투도〉의 묘사를 통해, 기층 사회의 힘으로 건축된 이 견고한 토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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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리우먼(斗六門)의 전투도
타이완을 평정한 그림
청 건륭(乾隆) 연간 동판화해당하며, 청대(清代) 당시 이곳을 방문하면 현재와는 매우 다른 토성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청대 타이완에서는 민란과 집단 간의 무력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기층사회는 방어를 위해 토성을 건설하였습니다. 임쌍문(林爽文), 대조춘(戴潮春) 등이 청조에 항거하는 사건에서도 더우리우먼은 관민 간의 중요한 쟁탈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보면, 이곳의 방어 시설은 다져진 흙, 목책(木柵), 가시 대나무 등을 조합하여 건축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직접 병사와 용병을 이끌고 도중에서 적을 토벌하며, 장화(彰化) 지역에 이르러 적의 소굴을 공격하여 수륙 양군이 연일 대승을 거둔 사건에 관한 보고
《월첩당(月摺檔)》 동치(同治) 2년(1863년) 11월하(十一月下)에 수록됨
신임 대만도(臺灣道) 겸 학정(學政)을 담당한 정왈건(丁曰健)
"동치 2년(同治二年) 11월 22일.다쟈(大甲)은 현재의 타이중시(臺中市) 다쟈(大甲) 지구로, 중요한 교통 요충지였습니다. 동치(同治) 연간에 발생한 대조춘(戴潮春) 사건 동안, 청군과 대조춘 군대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대만도였던 정왈건의 상소문을 통해, 당시 다쟈 지역에 방어를 위해 토성이 축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