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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성(城)’은 다르다.

타이완의 성곽 건축은 17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스페인 제국이 각각 타이난(臺南), 지룽(基隆), 단수이(淡水) 등지에 두꺼운 석벽과, 보루, 포대를 갖춘 서양식 요새를 건설하면서 타이완만의 독특한 성곽 건축 역사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그 후 대만으로 들어온 통치자들은 이러한 서양식 성의 독특한 스타일에 놀라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기존 구조를 바탕으로 개축을 진행하여 혼합된 양식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유지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서양식 성곽은 점차 퇴락하거나 옮겨져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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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차 및 제3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절단의 대청 제국 파견 기록

    1670년
    올페르트 다퍼(Olfert Dapper)

    ‘성(城)’은 일정한 구역을 규모 있는 높은 벽으로 둘러싼 방어 건축물을 뜻합니다. 대만에서 성곽 건축을 짓는 것은 17세기 서양식 요새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현재의 타이난(臺南) 지역에 잇달아 러란저청(熱蘭遮城, Fort Zeelandia)과 푸뤄민저청(普羅民遮城, Fort Provintia)을 건설하였고, 스페인 제국은 현재의 지룽(基隆)과 단수이(淡水)에 각각 성싸얼와둬청(聖薩爾瓦多城, Fort San Salvador)과 성둬밍거청(聖多明哥城, Fort San Domingo)을 세웠습니다. 《제2차 및 제3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절단의 대청 제국 파견 기록》에서는 러란저청의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타이완 훙마오청(紅毛城) 성벽 수리를 청하는 상소

    섬서도(陝西道) 감찰어사(監察御史) 이영아(伊靈阿)
    건륭(乾隆) 15년 5월 초파일

    서양식 요새는 정씨(鄭氏) 가문과 청나라가 타이완을 지배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661년 정성공(鄭成功)이 타이완에 왔을 때, 러란저청(熱蘭遮城) 일대를 안핑전(安平鎮)으로 개명하고, 이 성을 거주지로 삼았습니다. 한편, 푸뤄민저청(普羅民遮城)은 화약과 무기 보관소로 전환되었습니다. 청대에 들어서면서 안핑전 성은 수군의 관아와 관청 창고로 사용되었고, 당시 사람들은 점차 이를 훙마오성(紅毛城)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사용과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섬서도 감찰어사 이영아는 건륭 15년에 약간 붕괴한 훙마오청을 수리할 것을 상주하였습니다.

  • 안핑바오(安平堡)와 인근 주민 생활 풍경도

    1884년

    19세기 말에 이르러, 러란저청(熱蘭遮城)은 오랜 기간 대규모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태풍과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원래 매우 견고했던 요새가 큰 틀은 유지되었으나, 청대 말기의 화보의 그림 속에는 초가집과 논밭 사이로, 허물어진 벽과 기울어진 담장의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1874년 일본군의 타이완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청조는 흠차대신(欽差大臣) 심보정(沈葆楨)을 파견하여 관련 사무를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국방 강화를 고려한 청조는 얼쿤선(二鯤鯓)에 이짜이진청(億載金城)을 새로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러란저청의 외곽 성벽에서 벽돌을 해체하여 재료로 사용하였고, 이는 러란저청의 붕괴를 더욱 가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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