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맞이
전통적인 시간은 천문 현상의 규칙, 제사 의례, 농작물 수확을 기준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청 왕조의 시간은 한족의 풍습과 만주와 몽골의 옛 관습이 어우러진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계절과 절기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봄에는 만물이 움트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며, 가을에는 수확하고, 겨울에는 휴식하는 네 계절의 순환을 통해 청 왕조의 한 해를 이야기합니다.
가을: 수확하다
- 효현순황후(孝賢純皇后) 자수 화훼 부시 주머니
- 부시, 부싯돌, 옻칠 상자, 비단 보자기, 건륭제 어필, 자단목 상자 포함
- 청 건륭
- 고사(故絲)000225
만주족은 사슴 꼬리의 가는 털을 실로 사용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 부시 주머니는 짙은 남색 천으로 제작된 겉면에 사슴 꼬리의 가는 털을 자수 실로 사용하여 꽃과 덩굴 무늬를 수놓았습니다. 주머니에 딸린 목제 상자(木盒)와 중국어와·만주어로 적힌 기록에 따르면, 건륭 12년(1747), 건륭제는 목란(木蘭)에서의 가을 사냥 당시 효헌순황후 부찰씨(孝賢純皇后 富察氏, 1712–1748)와 함께 사슴 꼬리 털을 실로 사용하는 전통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후, 황후는 직접 이 부시 주머니를 손수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이듬해, 건륭제는 이 주머니를 다시 보게 되었고, 막 세상을 떠난 황후를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는 이 마음을 담아 시를 지어 황후에 대한 그리움을 기록했습니다.
주머니 안에는 부시와 부싯돌이 보관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실제로 부시를 사용한 흔적으로 보이는 자국과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주머니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건륭제가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이자, 황제와 황후의 깊은 애정과 추억을 담은 귀중한 유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어제시이집(御製詩二集)
- 권37
- 청 고종(지음) 장부(蔣溥) 등이 어명을 받들어 편찬함
- 청 건륭 연간 내부(內府)에서 필사한 수진본(袖珍本)
- 고전(故殿)029627
매년 중추절 이후, 황제는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 몽골의 왕과 귀족 그리고 팔기(八旗) 병정 만 명을 이끌고 약 20일간의 대규모 가을 사냥 행사인 '추선대전(秋獮大典)' 진행했습니다. 이 사냥 행사는 몽골 지역에 대한 통제 강화 및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몽골 각 부족의 왕과 귀족들은 천연두(痘)에 걸린 적이 없는 경우 '위반(圍班)' 제도를 통해 북경 진출 대신 사냥에 참여하였으며, 매년 번갈아 가며 목란위장(木蘭圍場)으로 가서 황제를 호위하고 사냥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사냥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의례에 참여했습니다: 사냥 준비 단계인 함포위(含布圍), 사냥 시범 관람인 관위(觀圍), 실제 사냥이 진행되는 행위(行圍), 사냥의 종료를 선언하는 파위(罷圍).
사냥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피서산장(避暑山莊)으로 이동하여 황제를 알현하고 '추선(秋獮)의 예'를 행했습니다.
- 황제가 쓴 중추절 축하 시와 그림
- 청 동방달(董邦達)
- 고화(故畫)002924
중추절 밤의 달맞이와 시 짓기는 주로 피서산장(避暑山莊) 36경(三十六景) 중 하나인 '운산승지(雲山勝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중추절 축하 시와 그림〉의 제시(題詩)는 건륭 11년(1746)에 지어진 것으로, 그 해에는 황제가 드물게 수도인 북경에서 중추절을 보냈습니다. 황제는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시를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정 한림(內廷翰林)에게도 시를 지어 화답하게 하여 임금과 신하가 함께 시를 나누며 명절의 운치를 즐기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