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정취를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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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조지백(曹知白) 두 그루의 소나무 그림
고화(故畫)272
비단
중요유물조지백(曹知白, 1272-1355)은 자(字)가 우현(又玄)이며, 호는 운서(雲西)로, 화정(華亭, 오늘날 상하이(上海)) 출신입니다. 천력(天曆) 2년(1329년) 음력 정월 초이렛날, 화가는 이 작품을 멀리 떨어진 친구인 거란계 귀족 석말백선(石末伯善, 1281-1347)에게 선물하며 그리움을 표현하였습니다.
물가의 바위 언덕 위로 두 그루의 소나무가 우뚝 서 있고, 가지들은 구불구불 휘어져 있습니다. 말라버린 나무의 가지들은 마치 게의 발톱처럼 보이며, 풍경은 쓸쓸하고 아련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작품의 화풍은 송대 화가 이성(李成, 916-967)과 곽희(郭熙, 약 1023-1087 이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소나무는 눈과 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함으로 군자의 의연한 품격을 상징하며, 변함없는 우정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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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왕불(王紱) 기원(淇園)과 위천(渭川)의 대나무 그림
고화(故畫) 390
종이
중요유물왕불(王紱, 1362-1416)은 자(字)가 맹단(孟端)으로, 명대의 유명한 대나무 그림 화가입니다. 작품 제목인 「기위(淇渭)」는 그림을 받은 양잠(梁潛, 1356-1418)의 찬사에서 유래하였으며, 그는 이 먹으로 그린 대나무를 감상하며 마치 대나무로 유명한 위천(渭川, 간쑤성(甘肅省)에서 발원)과 기원(淇園, 현재 허난(河南) 치현(淇縣) 부근)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묘사하였습니다.
이 작품에 거꾸로 늘어진 대나무 한 가지를 묘사하고 있으며,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가지는 담묵으로, 잎은 농묵으로 표현되었으며, 여백과 빡빡함의 배치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한 대의 대나무를 그렸지만, 수천 수만 개의 가지와 잎이 느껴지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나무는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때문에 문인 사대부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선물하기에 이상적인 그림의 제목으로 여겨졌습니다. -
명 정운붕(丁雲鵬) 동산도(東山圖)
고화(故畫)2292
종이이 작품은 동진(東晉)의 명사(名士) 사안(謝安, 320-385)이 자연에 몸을 의탁하고 동산(東山, 현재 저쟝성(浙江省) 상위(上虞) 지역)을 거닐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낸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안은 성품이 담담하고 관직 생활을 좋아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동산에 은거하였으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이를 완곡히 거절하다가 마침내 관직에 복귀한 인물입니다. 그의 기개와 품격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으며, 이러한 주제는 명대에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정운붕(丁雲鵬, 약 1547-1628 이후)이 지방 관리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품의 전경에는 한 문인이 지팡이를 짚고 앞서 걸어가고 있으며, 뒤에는 책을 들고 따르는 동자가 그려져 있어 사안의 풍모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 구성은 복잡하고 치밀하며, 산과 바위는 겹겹이 쌓여 가파르고, 집과 길을 지나는 행인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화가는 섬세하면서도 율동감이 넘치는 선으로 산의 질감을 세밀하게 표현하였으며, 이러한 화풍은 원대의 화가 왕몽(王蒙, 1308-1385)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
명 진홍수(陳洪綬) 국화를 감상하는 그림
고화(故畫)649
종이
중요유물진홍수(陳洪綬, 약 1599-1652)는 자(字)가 장후(章侯)이며, 호는 노련(老蓮), 회지(悔遲)로, 저쟝성(浙江省) 주지(諸暨) 출신입니다. 그는 인물화와 꽃과 새 같은 주제를 그리는데 능했으며, 그의 인물 표현은 종종 기이하고 과장되어 변형의 재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한 고사가 지팡이를 들고 나무 마디가 있는 낮은 의자에 앉아 돌 위에 놓인 국화가 꽂힌 화병을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물의 의복 주름은 정교하고 힘있게 그려졌으며, 돌을 표현한 필치는 거칠고 자유분방하여 화가가 다양한 필법에 능숙함을 보여줍니다. 고사와 국화는 도연명(陶淵明, 약 365-427)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군자의 고상한 인품과 은둔 생활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에 쓰여진 글에는 이 작품이 송대(宋代) 이당(李唐, 1066-1150)의 〈완국도(玩菊圖)〉를 모방하여 친구에게 선물한 것임을 언급하며, 고풍스러운 정취를 담고자 했음을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