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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성급했던 이별

인생은 모두 그 끝이 있으며 공주의 마지막은 일반인들보다 빨리 왔던 것 같습니다. 청나라 공주의 평균 수명은 단 26살로 많은 공주들이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세상을 향해 작별인사를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료기술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고 남성을 우대하고 여성을 가볍게 여기는 전통적인 관념과 감정적인 토대가 없는 혼인관계는 아마도 공주의 생활의 질과 심신 건강에 부정적인 요소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주의 그림자는 생명이 끝나는 것에 따라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기억되고 전해지며 글로 쓰여 졌습니다. 공주는 이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고 다원화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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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정고륜(莊靜固倫)공주 넷째 여동생을 기리는 글

    《양정서옥전집정본(養正書屋全集定本)》에 수록
    청 선종(宣宗) 지음
    1822년 내부(內府) 검은 줄을 친 필사본
    고전(故殿)035827

     

    1811년 가경황제의 넷째 딸인 장정고륜 공주가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28세였습니다. 황자 면녕(훗날 도광(道光)황제)는 <장정고륜공주 넷째 여동생을 기리는 글>에 간단하게 장정공주의 생애와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상에 있을 때의 상황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면녕과 장정공주는 모두 황후 시타라(喜塔臘, Hitara)씨의 소생으로 나이가 비슷한 친누이에 대해 면녕의 감정은 더욱 깊었습니다. 제문 마지막에 면녕은 「나와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어른들의 뜻을 받들고 부모님을 모셨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가버리는가?」라는 한 구절로 짧지만 오빠와 여동생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사이가 매우 좋았던 것을 추억하며, 이어서 왜 나를 남겨두고 가는가 라는 무거운 말로 너무나도 떠나 보내기 힘든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혜민고륜(慧愍固倫)공주의 원침(園寢)을 답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글

    성서(成書)가 올린 글
    1815년7월3일
    고궁(故宮)104707

     

    1815년 가경(嘉慶)황제의 아홉 번째 딸이 고작 다섯살의 나이로 요절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가경황제는 혜민고륜 공주라고 봉하고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똑같이 다섯살에 요절한 다섯째 딸과 함께 묻으려고 직예(直隸) 태녕진(泰寧鎮) 총병(總兵) 성서에게 「다섯째 공주의 원침」으로 가서 살펴보도록 지시합니다. 이것은 성서가 가경황제에게 회신을 보내는 글로 자세하게 다섯째 공주의 원침의 공간 상태에 대해 보고를 합니다. 그 후 혜민 공주도 바로 그 땅에 묻히게 되는데 무덤 건축은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으며 바로 오늘날 중국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 이(易)현 장거촌좡(張各村莊) 경내의 「공주 원침」으로 황실 묘인 「서릉(西陵)」의 일부입니다.

  • 「공주릉(公主陵)」 지명

    《흠정열하지(欽定熱河志)》에 수록됨
    화신(和珅), 양국치(梁國治) 등이 편찬
    1781년 무영전(武英殿) 간행본
    고전(故殿)029371

     

    「공주릉」은 바로 오늘날 중국 내몽고자치구 허펑(赤峰)시 숭산(松山)구 다먀오(大廟)진 궁주링(公主陵)촌으로 원래 강희(康熙)황제의 열 세번째 딸인 화석온각(和碩溫恪)공주의 무덤입니다. 그 땅은 원래 몽고 웡뉴터부(翁牛特部)의 생활 영역으로 부마 창진(蒼津) 때문에 온각공주는 여기에 묻히게 되었고 훗날 이 지역은 이러한 연고로 그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청나라의 제도에서 제후의 무덤을 「능(陵)」 비빈(妃嬪), 황자, 황녀 및 기타 황실 귀족의 무덤은 「원침(園寢)」이라고 불렀던 사실입니다. 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공주릉이라는 이 이름은 공식적인 제도상의 용어가 아니지만 이 칭호가 대표하는 것은 바로 지방의 관점과 목소리인 것입니다.

  • 건륭(乾隆)황제와 열째 딸이 원명원(圓明園)을 돌아본 이야기

    《죽엽정잡기(竹葉亭雜記)》에 수록됨
    요원지(姚元之) 지음
    1893년 간행본
    서정요(徐庭瑤)선생 기증
    증선(贈善)001211

     

    책 속에 기록된 것은 건륭(乾隆)황제의 열째 딸 고륜화효(固倫和孝) 공주의 이야기로 대략 이러합니다: 어느 날 공주는 부친인 건륭황제와 함께 원명원에 놀러가 동락원(同樂園) 상점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허신(和珅)이 줄곧 함께 하였습니다. 건륭 황제는 길에서 붉은 색 겹옷을 파는 것을 보고 공주가 허신을 「장인」이라고 부르며 농담을 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을 생각하고 공주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장인에게 가서 그 옷을 사달라고 하여라.” 허신이 이를 듣고 반응도 빠르게 28금을 꺼내어 그 붉은 겹옷을 사서 공주에게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화효공주가 남성과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적인 인상 속의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일반인들도 공주의 이야기를 말하고 전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공주의 모습은 더욱 생동감이 있고 다원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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