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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과 벌에 이치가 있다

혹시 궁금해한 적이 있으십니까? 황제가 어떻게 누구에게 상을 내려야 하는지, 또는 어떤 선물을 주어야 할지를 알게 되는지 말입니다. 사실, 이 질문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지만, 강희제 시대의 관리들이 비밀리에 상소한 밀접(密摺) 제도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상과 벌에는 도리(道理)가 있습니다. 여기서 ‘도(道)’라는 글자는 ‘절차’의 의미도 있고 ‘이치’라는 의미도 가집니다. 밀접 제도는 강희제 말기에 점차 형성되었으며, 이후 청나라 황제들은 이 제도를 통해 신하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정무를 장악하여 권력을 집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하사는 단순한 증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책임의 교환이기도 합니다. 상소문 속에 담긴 군신 간의 대화는 선물 뒤에 숨겨진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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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 상주문 뒤에 숨겨진 권력의 운영방식–왕홍서와 강희제의 비밀 교류

    비밀 상주문
    왕홍서(王鴻緒)

    청 강희 44년에서 60년 사이(1705-1721)
    故宮002511-002558、故宮002570-002573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는 황제가 상주문을 열람하고 비준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시는 사실은, 상주문을 칭하는 ‘주접(奏摺)’이라는 명칭과 제도 자체가 바로 강희제에 의해 창안되었다는 점입니다.
    청대 초기의 문서 제도는 지연이나 기밀 누설과 같은 여러 문제를 자주 초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강희제는 만주족의 문안 인사 전통을 응용하여, 측근 관리들에게 ‘문안인사 주접’이라는 형식으로 직접 지방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강희제는 이 상주문을 통해 지방 사무를 직접 묻고 살피기도 하였습니다. 이 제도는 점차 확대되어, 일반 대신들도 상주문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상주문의 형식과 내용도 일정한 규범에 따라 정비되면서,
    이후 청대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서 제도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고 계신 이 〈왕홍서의 작은 비밀 상주문〉은 강희제와 왕홍서 간의 군신 교류가 담긴 문서입니다. 왕홍서(王鴻緒)는 예부 시랑, 공부 상서, 호부 상서 등 요직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일반적으로 관리가 상주문을 작성하면 봉인을 한 뒤, 신뢰할 수 있는 인편을 통해 자금성으로 전달하였으며 이를 거쳐 황제에게 올라가면 황제가 직접 열람하고 비준하였습니다.
    이 비밀 상주문은 총 52건으로, 작성 시기는 1705년부터 1721년까지(강희 44년부터 60년)에 이르며, 특히 1705년부터 1708년, 즉 강희제의 다섯 번째 남순(南巡) 기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왕홍서는 이 비밀 상주문들을 통해 황제에게 관원의 비호 행위, 뇌물 수수, 공금 횡령 그리고 지방 관리가 강남 여성들을 유인해 북경으로 데려오는 사건 등 민감한 사안들을 보고하였습니다.
    또한 이 비밀 상주문들은 크기와 형식이 일정하지 않은데, 이는 비밀 상주문 제도가 막 도입된 시기였기에 아직 문서 형식이 규범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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