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과 연봉 인상
황제의 하사는 단순히 물질적인 선물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직위와 명성을 높이는 승진과 작위를 높이는 것, 관직을 높이고 칭호를 수여하는 것, 사후 작위를 내리는 것과 칙서 하사, 관모와 깃털 장식, 공훈을 세운 신하에게 황색 마괘를 하사하는 것, 훈장 수여 등은 더욱 일반적인 포상의 형태였습니다.
포상의 종류가 다양했기 때문에 황제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강희제와 옹정제 시기에는 포상 제도가 점차 정립되었으며, 건륭제 이후에는 승급 작위 제도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어서 광서제 시대에는 외교적 필요에 따라 상호 훈장을 수여하는 관례가 정착되었습니다. 영예와 명성을 상징하는 비물질적 포상은 물질적인 보상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녔습니다.
공훈패: 무공과 영광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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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연간 종이 재질의 공훈패
광서연간 종이 재질의 공훈패
청 광서11년11월23일(1885-12-31)
국립역사박물관 10032공훈패는 옛날 무공을 세운 이에게 하사된 일종의 상장입니다. 명나라 시기에는 주로 은으로 만든 공훈패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오늘날의 '훈장'과 유사한 형태로, 그 위에는 ‘상(賞)’ 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종이로 만든 공훈패가 주를 이루었으며, 이는 현대의 '상장'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국립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공훈패는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에는 ‘공패(功牌)’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이 공훈패는 당시 운남(雲南) 군무를 총괄하던 회판(會辦)으로서 호남(湖南) 제독을 맡고 있던 일등 자작(子爵) 포초(鮑超, 1828–1886)가 문동(文童, 또는 유동(儒童)이라 불리며,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아동급의 생원)인 진원(陳元)이 운남 점익주(霑益州) 주둔지에서 공을 세운 것을 인정하여, 광서 황제에게 상주하여 관모 장식인 팔품정대(八品頂戴)를 하사 받게 하였고, 동시에 격려의 의미로 공훈패도 함께 내려진 것입니다.
공훈패를 받은 사람은 일종의 명예로운 표식을 받았다는 의미로, 대개 관직 승진이나 은전 지급 등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로 말하면 승진과 보너스를 함께 받은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자 위 구슬로 보는 관직 등급: 청나라 관리의 모자에도 서열이 있다
한편, 관모장식 '정대(頂戴)'는 청대 관리가 조복, 길복 또는 상복을 착용할 때 머리에 쓰는 관의 꼭대기 부분을 가리키며, 이 위에는 보통 보석이 박힌 '정주(頂珠)'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관리의 품계에 따라 모자 위에 사용되는 보석이 서로 다릅니다. 청나라 초기에는 다음과 같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1품 관원은 루비, 2품은 산호, 3품은 사파이어, 4품은 청금석, 5품은 수정, 6품은 백색 조개, 7품은 순금, 8품은 음각 무늬의 투조 금속, 9품은 양각 무늬의 투조 금속을 사용하였습니다. 관직 품계가 없는 사람은 정주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옹정 연간에 이르러, 3품부터 6품까지의 관원의 정주는 색상이 유사한 유리 재질로 보석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염색한 상아나 뼈를 사용하여 산호나 보석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관과 화령 — 청대 관모의 섬세한 격식
상주문에는 황제가 깃털장식 영자(翎子), 알약, 영관(翎管), 공작 깃, 법랑제 코담뱃병, 대모로 만든 부싯돌 주머니, 극식(克食) 등을 하사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가운데 극식은 궁중에서 황제의 음식이며, 영자·영관·공작깃은 모두 청대 관리의 관모에 장식되는 물품입니다.
관리의 관모 맨 위에는 관모 장식인 정대(頂戴) 외에도 영관과 화령(花翎)이 있습니다. 영관은 길이가 약 6~7센티미터 정도로, 재질은 옥, 비취, 법랑, 자기 등 다양하며 영자(翎子)를 꽂기 위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영자는 관리의 관모 뒤쪽에 꽂는 깃털로, 주로 황제가 공이 있는 관리에게 하사하는 것입니다. 정대와 화령은 청대 관리의 위계를 상징하는 요소로 자주 여겨졌습니다.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는 관리가 잘못을 저질러 관직을 잃게 되는 경우 황제가 ‘정대와 화령’을 빼앗는 것을 통해 벌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영자는 남령(藍翎)과 화령(花翎) 두 종류로 나뉩니다. 남령은 갈색귀꿩의 깃털로 만들어지며, 주로 6품 이하의 낮은 품계의 관리나 근위병에게 하사됩니다. 반면, 화령은 5품 이상의 고위 관리나 용맹을 세운 무장에게 하사되는 깃털로, 공작의 깃털에서 채취한 것이기 때문에 공작령(孔雀翎)이라고도 불립니다.
청대에는 공작깃을 하사받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며, 이는 지극한 총애와 영예를 상징하였습니다. 공작깃의 깃털 끝부분에는 보통 눈과 비슷한 무늬의 반점이 있으며, 이는 단안(單眼), 쌍안(雙眼), 삼안(三眼)으로 구분됩니다. 공작깃의 눈 무늬 개수가 많을수록 더 큰 공훈을 뜻하며, 그 중 삼안화령(三眼花翎)은 지위가 가장 존귀함을 나타냅니다.
황제가 하사한 쌍룡이 장식된 훈장: 청말(清末)의 영광과 서구식 훈장의 결합
1882년 2월 7일(광서 7년 12월 19일),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의 대신인 공친왕 혁흔(奕訢, 1833–1898)은 황제에게 ‘황제가 하사하는 두 마리 용이 그려진 훈장인 보성의 모양 디자인과 등급 구분에 대해 재가를 요청하였고 아울러 관련 규정을 제정하였습니다. 보성은 그 위에 두 마리 용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쌍룡보성’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두 마리 용은 황권(皇權)을 상징하며 초기에는 등급에 따라 1등부터 3등까지로 나뉘었고, 각 등급은 다시 3개 등급(총 9단계)으로 세분되었습니다. 보성은 금, 은, 법랑, 다채로운 보석으로 장식되어 그 존귀함을 드러냈으며 외곽에는 여러 갈래의 빛살 모양이 뻗쳐 있고, 팔각 또는 십 육각 별 모양의 형태를 이루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등급 체계가 더욱 세분화되어 총 5등 11급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국립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이 「황제가 하사한 쌍룡이 장식된 훈장 보성」의 가장자리는 16갈래의 별 모양 광선이 뻗어 있으며, 보성 중앙에는 만주어와 한자로 ‘어사쌍룡보성(御賜雙龍寶星)’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상단 중앙에는 작은 붉은 산호, 중앙에는 큰 청금석이 박혀 있고, 법랑으로 된 녹색 쌍룡이 이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형식을 볼 때, 이 보성은 제4등 보성으로 판단되며, 공을 세운 무관 및 병사에게 하사된 것입니다. 쌍룡보성은 중국 전통 문화와 서양 훈장의 형식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으나 이 훈장 제도는 수십 년간만 시행되었고,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함께 폐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