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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한 작자미상 쓰촨성 신진현 절벽에 있는 무덤의 인물이 그려진 화상석

    이 작품은 쓰촨(四川)성 신진(新津)현에서 출토된 동한 시기 절벽에 안치된 석관의 측면에 그려진 화상석(畫像石)*을 본떠 다시 새긴 것입니다. 좌우로 펼쳐진 3개의 화면에 3가지 이야기를 표현하였습니다. 이번에 전시된 <노자를 만나는 공자>는 쓰촨에서는 지금까지 유일한 예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이야기는 한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교육자를 존경하고, 도를 배우고자 하며, 성인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정신적 초월을 추구하는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 작품에는 노자(老子, 기원전 6-5세기)와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및 학생만이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른 지역 것과 전혀 달라 독특하며 알려지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사당과 묘를 짓는 데 사용된 돌에 장식으로 그림을 새겨 넣은 것

  • 송 작자미상 사마광의 독락원

    1073년 사마광은 뤄양(洛陽)에 독락원(獨樂園)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이 정원에서 15년 동안 살았고 여기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고 고상한 모임을 열었습니다. 독락원에는 사마광의 생활 모습과 인생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으며 동시에 북송시대 문인에 의해 만들어진 정원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오래전부터 송나라 사람이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그림속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만 정원의 구성이나 소박한 정원의 양식이 각종 사료에 기록된 것에 부합합니다. 때문에 다른 독락원 그림들 보다 건축을 삼차원적으로 설명해 주는 그림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정원을 복원해 보는데 도움이 됩니다.

  • 명 작자미상 곽충서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왕유의 망천도를 본뜬 그림

    당나라 이후 <망천도(輞川圖)>는 왕유(王維, 701-761) 가 그렸다고 하는 <망천집(輞川集)>에 실린 20가지 경치를 그린 그림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후대 사람이 본뜬 그림 중에서 곽충서(郭忠恕,?-977)가 그린 것이 가장 예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련 연구에서는 후대 사람들이 본 떠서 그린 판본들이 모두 망곡(輞谷)의 지형과 왕유의 시구절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작되어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작품은 「근죽령(斤竹嶺)」과 「궁괴맥(宮槐陌)」에 무관(武關)과 역도(驛道)를 그리지 않았고 「남타(南垞)」와 「북타(北垞)」의 제목이 서로 바뀌어 모사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와 함께 명나라 후기부터 시작된 왕유의 별장에 대해 추측해 보았던 유행을 보여줍니다.

  • 명 정중 왕몽의 ‘갈홍의 이사’를 본뜬 그림

    정중(鄭重, 1610-1648사이에 활동)의 자는 중생(重生) 호는 풍도인(風道人)과 난중(嬾重)이며 정운붕(丁雲鵬, 1547-1628이후)의 제자로 불상과 작은 경치의 산수화를 잘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도사 갈홍(葛洪, 283-343)이 나부산 (羅浮山)으로 옮겨가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도를 닦았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이어지는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고 산길과 흐르는 물 그리고 건물이 구불구불하며 구름과 안개가 피어오르고 학이 창공을 날아가는데 신선의 경치와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붓질에는 왕몽(王蒙, 1308-1385)의 우모준(牛毛皴)을 모방하여 선들이 가늘고 빽빽하며, 색채는 밝고 우아하며 붓과 먹의 멋스러움과 장식 효과를 겸비하고 있어서 후대사람들이 「송대와 원대의 명가를 모방하였으며 그 모양과 운치를 상세히 연구하였다」고 평했던 것에 부합됩니다.

  • 명 항성모 고산에서 학을 날리다

    항성모(項聖謨, 1597-1658)의 자는 공창(孔彰)이며 호는 이암(易庵)과 고서산초(古胥山樵)등이 있는데 명말청초 시기에 살았던 명나라에 충절을 지킨 화가로 「가흥화파(嘉興畫派)」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임화정(林和靖)이 시후(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였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소식(蘇軾)의 〈학을 날려보낸 정자에 대해 적은 글〉의 내용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작은 산기슭 매화 숲 가운데 한 사람이 머리를 들어 바라다보고 있고 정자 너머에서 학 한 마리가 돌아오고 있는데 시후의 소식과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이름을 딴 두 둑길과 보숙탑(寶俶塔)이 있는 경치가 동심원 모양으로 둥그렇게 그려져 사람과 학, 매화, 언덕 사이의 친밀함과 세속을 멀리 떠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경치와 이야기 그리고 글의 내용이 화면 속에 서로 교차하고 있는데 매우 창의적이며 속되지 않은 맑고 우아한 그림입니다.

  • 중화민국시기 부유 태평광기 이야기

    부유(溥儒, 1896-1963)의 자는 심여(心畬)로 마지막 황제인 부의(溥儀, 1906-1967)의 사촌형으로 시와 서예,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태평광기(太平廣記)》는 978년에 편찬되었는데 약 500여 가지의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부유의 이 작품은 총 26장으로 각 장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하였습니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아주 작은 화면에 압축하였으며 붓질은 정교하고 아름답고 작품의 품격이 맑고 깨끗합니다. 또한 이야기의 원문을 그림 위에 써 놓았는데 서예는 멋스러우며 깔끔하고 고상합니다. 작품 전체에 그림과 글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데 어떤 이야기는 기괴하고 또 어떤 것은 유머러스 하고, 냉소적인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도덕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문인의 서재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용을 불사르다〉, 〈요소품(姚蕭品)〉,〈해변가의 돌거북이〉, 〈승려 지통(智通)〉의 네 그림입니다.

  • 중화민국시기 장대천 막고굴 녹왕본생경을 모사한 그림

    장대천(張大千, 1899-1983)의 이름은 원(爰)이며 당호는 대풍당(大風堂)으로 발묵(潑墨)과 발채(潑彩) 화풍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 서화가입니다.

    본생(本生) 이야기는 석가모니가 성불하기 전의 윤회와 중생을 교화한 것을 말합니다. 이 두루마리는 돈황연구원(敦煌研究院)에서 번호를 메긴 257호 굴에 그려진 녹왕(鹿王)이 사슴무리를 구하고 국왕을 감화시킨 이야기를 모사하였습니다. 원작은 돈황에서 유일한 녹왕을 주제로 한 벽화로 이야기 줄거리에 따르는 한계를 뛰어넘어 녹왕이 국왕을 마주하는 클라이맥스를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여 벽화의 구도를 석굴의 공간에 맞추는 교묘한 구상을 보여줍니다. 1500년이 지나 원래 그림의 색은 변색이 매우 심하지만 이 모본이 있기 때문에 원래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장대천 선생이 본원에 기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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