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과 고개를 넘어
후난성(湖南省)과 쓰촨성(四川省), 구이저우성(貴州省)이 교차하는 융수이(永綏), 간저우(乾州). 펑황산팅(鳳凰三廳), 그리고 융순(永順)、바오징(保靖) 두 현 등의 상시(湘西) 지역은 도처에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있어 계곡물이 곳곳에 흐르는 곳으로 옛날부터 먀오족(苗族)과 투쟈족(土家族) 등 소수민족이 생활하고 그 자손들이 번창했던 곳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 대해 중앙정부에서는 이들을 견제하거나 소수민족의 족장이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명 만력(萬曆) 연간(1573-1620)에 먀오족의 화를 단절시키고자 변경에 벽을 쌓아서 한인들(복속한 먀오족 포함)과 먀오족 사이를 분리시켰습니다. 청대에 이르러 벽이 많이 무너져 내렸지만 청정부는 되도록 충돌을 피하면서 다시 벽을 쌓지는 않았습니다. 옹정(1679-1735) 이후 중앙에서 임기제 관리를 파견하였으나 효과가 없었으며 먀오족의 난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건륭과 가경황제 시대 이후에는 다시 변방의 벽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경계선을 따라 망루와 초소들, 관문을 설치하였습니다.
전시된〈간저우(乾州), 융수이(永綏), 바오징(保靖) 세 곳의 청(廳)과 현(縣)의 보루와 초소 전체 지도〉 두루마리의 첫 부분은 융수이(오늘날 화위안현(花垣縣))의 미눠(弭諾) 초소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향하고 바오징현에 이르러 남쪽을 향하여 쳰저우청(乾州廳)에 이르고 두루마리의 마지막에는 완시쉰(灣溪汛)에서 끝나는데 성과 석조건축물, 관문, 진영 등 청대 군대 주둔지 체계를 그린 것입니다. 이 밖에도 구불구불한 산들과 높은 고개 사이로 황색의 선으로 짧고 검은 침목을 더하여 표시한 도로는 역시 상당히 눈에 띕니다. 지도 안에 이미 동치연간(1862-1874)설치된 완옌치쉰(萬岩溪汛)과 야커쉰(牙科汛)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도가 그 이전에 그려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