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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민국시기 저우톈유 경석(經石) 골짜기에 새겨진 불경 글자를 모아서 만든 대련

    이 대련은 저우톈유(周天游, 20세기)가

    《태산경석욕금강경(泰山經石峪金剛經)》의 글자를 모아서 만든 것입니다. 원작은 북제(北齊)의 승려인 안도일(安道一, 518-약580)이 새긴 것으로 서체는 예서와 해서와 중간에 있으며 또 전서체가 섞여 있기도 합니다. 붓질이 둥글고 차분하며 구조는 넓고 느슨한데 기교가 훌륭하지만 오히려 서투르게 보이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황걸(黃杰,1902-1995)장군의 소장품으로 아드님이신 황리롱(黃莉容)과 황원루(黃文如)선생께서 기증하셨습니다. 대련의 가장자리에는 “건옹(建翁)노인의 장수를 기리며, 린촨(臨川)의 저우톈유가 글자를 모은 것.” 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건옹’은 바로 황걸입니다. 저우톈유는 쟝시성(江西省) 푸저우(撫州)사람으로 서화가인 마만리(馬萬里, 1904-1979)와 서비홍(徐悲鴻, 1895-1953)등의 사람들과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는 1944년에 소장 계급까지 올랐는데 아마도 황걸과는 오랜 지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당 백희림 존승다라니(尊勝陀羅尼) 당(幢)*을 기념하는 글

    이 탁본의 내용은 장엄사(莊嚴寺)의 승려인 법경(法鏡, 연대미상)이 〈불정존승다라니경당(佛頂尊勝陁羅尼經幢)〉을 위하여 쓴 당을 조성한 것을 기념하는 글로 불경의 위력을 찬양하고 당주 장초벽(張楚璧, 연대미상)등의 사람들이 지방의 안녕을 위하여 모금을 하고 경을 새긴 당을 만들게 된 것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백희림(白希琳, 연대미상)이 글을 쓰고 새겼습니다. 서예로 보자면 당대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각 글자의 모양부터 전체적인 구성까지 〈왕희지(王羲之)의 글자를 모아서 만든 성스러운 가르침의 서문〉의 전통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여 글자 하나하나가 독립된 행서로 글자들이 아래위로 이어지는 방식이 단정하고 세로로는 줄을 맞추어 썼지만 가로로는 줄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네모지게 꺾이는 필법을 많이 사용하였고 선이 가늘면서도 힘이 있고 글자의 형태는 세로로 길면서 우측 모서리 부분이 높이 솟아 있고 기세가 씩씩하고 힘찬 것이 이옹(李邕, 678-747)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글은 〈전료문(全遼文)〉에 수록되어 있으며 원대 작품이라고 추정되기도 하지만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 명 당인 등 명나라의 다섯 사람이 쓴 한산사를 위한 모금을 제안하는 글

    쑤저우(蘇州)에 있는 한산사(寒山寺)의 옛이름은 보명선원(普明禪院)으로 장계(張繼, ?-779)가 쓴 <밤에 단풍나무 다리에 배를 정박하고>라는 시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한산사는 수차례 화재를 입어서 명나라 때 여러 사람들이 이 절을 위해 불전과 큰 종을 만들기 위해 모금을 하는 글을 썼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는 그 중에서 당인(唐寅, 1470-1524)이 약 1522-1523년에 쓴 <종을 만드는 것을 제안하는 글>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힘차고 멋스러운 서예양식은 이옹(李邕, 678-747)과 조맹부(趙孟頫, 1254-1322)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그 뒤로 진류(陳鎏, 1506-1575)의 제안하는 글과 조이광(趙宧光, 1559-1625)의 인수(引首)가 있습니다. 조이광은 행서와 초서를 전서에 접목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였지만 이 작품의 인수에는 의도적으로 고르고 정연하며 빈틈이 없는 양식을 사용하여 모금에 대한 진정성을 나타내었습니다. 작자미상의 <계속해서 보시를 하십시오>와 1618년 범윤림(范允臨, 1558-1641)과 모감(毛堪, 16-17세기)의 제안하는 글이 가장 늦은 것으로 동기창(董其昌, 1555- 1636)의 명성이 자자했던 때라 서예도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필롱(畢瀧, 1733-1797)이 수집하고 장황을 해서 현재의 긴 두루마리가 되었습니다.

  • 청 작자미상 정운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장엄대사(莊嚴大士)의 상서로운 상

    정운붕(丁雲鵬, 1547-1628이후)의 자는 남우(南羽) 호는 성화거사(聖華居士)인데 명대 후기의 인물화가로 변형주의 양식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관음보살을 그린 것으로 파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렸고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발은 연꽃을 밟고 있는데 얇은 가운을 걸치고 갖가지 모양의 구술을 꿰어서 만든 장신구인 영락(瓔珞)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붓놀림이나 채색이 섬세하고 정교하며 문양이 흠잡을 데가 없고 색채가 풍부하고 밝으며 조화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오관과 손과 발 등은 색을 번지게 하는 방식으로 입체감을 표현하였습니다. 비록 1609년이라고 서명되어 있지만 정운붕의 화풍과 달라서 아마도 후대 사람이 정운붕의 그림 원고에 따라 그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청 정관붕 극락세계도

    정관붕(丁觀鵬, 1726-1771사이에 활동)은 건륭(乾隆)황제 때 활동한 중요한 궁정화가입니다. 이작품은 1759년에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묘사된 서방 극락세계를 그린 것입니다. 주존인 아미타불의 머리 위에서는 빛이 나고 양옆에 관세음보살은 보대(寶臺)를, 대세지 보살은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위쪽에는 상서로운 구름과 칠보 누각이 있고 아래쪽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보살과 나한, 천인(天人), 기악천(伎樂天)등이 있습니다. 화면의 가장 아래쪽에는 연꽃위에 동자와 비구, 보살 등을 그려 「구품왕생(九品往生)」의 주제를 표현하였습니다. 내용이 풍부하고 형태가 정교하며 색상이 아름답고 서양의 음영법과 원근법을 함께 사용하여 정토의 웅장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청 작자미상 커쓰(緙絲)*로 만든 극락세계도

    커스 기법으로 만든 이 작품은 강녕직조국(江寧織造局)에서 제작한 것으로 정관붕(1726-1771사이 활동)이 1759년에 그린 <극락세계>를 바탕그림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림 위쪽의 건륭황제(1711-1799)가 쓴 제발에 따르면 1782년 이후에 완성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건륭시대 궁정에서 자주 동일한 바탕그림을 서로 다른 소재에 사용하였던 예술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안의 여러 인물들과 동식물, 건축과 장식문양의 모양은 원작에 상당히 가깝지만 전체적으로 색채의 채도를 낮추고 또한 남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여 서방정토의 청량하고 장엄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통 직조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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