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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민국 오창석(吳昌碩) 전서 팔언 대련

    종이 
    구서(購書)001409

    오창석(吳昌碩, 1844–1927)은 저쟝(浙江) 안지(安吉) 사람으로 초명(初名)은 준(俊), 자는 창석(昌碩)이며 또 다른 자는 창석(倉石), 호는 부로(缶廬)와 고철(苦鐵) 등이 있습니다. 항저우 서령인사(西泠印社)의 초대 사장을 지냈으며 근대 금석문과·서예, 회화의 거장으로 손꼽힙니다. 서예는 석고문(石鼓文)에 뛰어났으며 종정(鐘鼎)과 도기에 쓰인 고문의 구조를 절묘하게 융합해 옛것을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습니다.

    이 대련은 석고문의 문구를 모아 68세 때 쓴 작품으로 붓놀림이 둥글고 두터우며 선에는 리듬이 풍부하고 글자의 구성에서 드문 것과 촘촘한 것의 조절이 적절하고 기세가 웅장하고 힘찹니다.

  • 중화민국 왕지(王禔) 예서 구언 대련

    종이 
    구서(購書)001497

    왕지(王禔, 1880–1960)는 항저우(杭州) 출신으로 상하이(上海)에 오랫동안 거주하였습니다. 본명은 수기(壽祺), 자는 유계(維季), 호는 복엄(福厂)이며, 일흔 이후에는 호를 지묵노인(持默老人)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저명한 전각가이자 서예가로, 서령인사(西泠印社)의 창립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 대련은 예서에 전서의 필법이 융합된 작품으로, 누에의 머리처럼 생긴 필획의 시작 부분은 기운을 머금은 채 절제되어 있으며, 끝은 제비 꼬리처럼 드러나지 않고 필획은 들고 누름의 변화가 조화를 이루며 순수한 고전미, 학문적 깊이와 고상한 기풍이 함께 어우러지며 고대 금석문의 기운이 짙게 느껴집니다.

  • 청 하소기(何紹基) 행서 칠언 대련

    종이 
    증서(贈書)000284

    하소기(何紹基, 1799–1873)는 자는 자정(子貞)이며, 후난(湖南) 다오저우(道州) 사람입니다. 도광 16년(1836)에 진사에 급제하였습니다. 서법은 안진경(顏真卿, 709–785)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북위의 비문과 한대의 예서도 깊이 연구하여 독특하고 뚜렷한 개성을 지닌 서풍을 이루었습니다.

    글을 쓸 때 손목과 손바닥을 굽혀 손가락이 가슴 쪽을 향하게 하고 붓을 높이 드는 독특한 집필법을 사용하여 선이 유난히 민첩하고 여기에 먹색의 진하고 옅음, 마르고 촉촉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통쾌하고 힘찬 화면을 형성합니다. 전지(箋紙) 자체는 두 폭의 독립된 화훼 구도로 되어 있으며 어두운 배경이 연한 색상의 문양을 돋보이게 하여 마치 음각된 백문 인장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이 작품은 담백우(譚伯羽), 담계보(譚季甫) 두 분께서 기증하였습니다.

  • 청 전풍(錢灃) 해서 칠언 대련

    종이 
    증서(贈書)000171

    전풍(錢灃, 1740–1795)의 자는 약보(約甫), 호는 남원(南園)이며, 윈난(雲南) 쿤밍(昆明) 사람입니다. 건륭 36년(1771) 진사에 급제하였습니다. 당시 화신(和珅)이 권세를 잡고 있었으나, 전풍은 그 앞에서 직접 비난하였고, 또한 섬서총독(陝西總督) 필원(畢沅, 1730–1797)과 산동순무(山東巡撫) 국태(國泰, ?–1782)의 부패 사건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 바 있습니다.

    이 대련은 푸른색 밀랍을 먹인 종이 위에 써 있는데, 그 위에 구름 무늬 등 장식이 가득 그려져 있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해서로 쓴 필획 구조는 반듯하고 필력은 두툼하고 단단하여 안진경체의 중후하고 무게 있는 기풍을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담백우(譚伯羽), 담계보(譚季甫) 두 형제께서 기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