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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시선이 교차하다

국립고궁박물원은 약 70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유물에 대한 해석의 여정은 타이완이라는 땅에서 자라난 하나의 문화 서사이기도 합니다. 유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소장품 정리 작업, 즉 목록, 명명, 연대 추정에서 시작되며 이를 통해 각 유물에 완전한 박물관 소장품의 지위가 부여됩니다. 자료정리, 출판, 이미지 기록 등을 거치며 세상 사람들은 점차 고궁박물원이 지닌 소장품의 특색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 본원의 공개 전시와 관람객과의 대화를 통해 그 해석 방식 역시 시대와 더불어 발전해 나갑니다. 국가 서사의 맥락 속에서, 고궁의 소장품은 정신적인 상징성과 물질적인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역할을 부여받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연구 시각의 전환과 더불어 다채로운 역사적 관점이 부상함에 따라 소장품이 지닌 의미도 한층 더 견실해지고 있습니다. 타이완에서의 75년은 고궁 소장품의 가치가 점차 확립되고, 변화하며, 재인식되어 온 과정이었고 그것은 또한 본원을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박물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하였습니다. 만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소장품의 해석이 이루어집니다 — 유물은 비록 말이 없지만 여러 세대에 걸친 고궁 사람들의 정리를 통해 점차 그 생명의 역사가 구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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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 한간(韓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말 기르는 그림(牧馬圖)
    • 故畫 001289N00000003

    1954년에 간행된 『중화 유물 집성(中華文物集成) 제1집』은 고궁박물원이 타이완에서 편찬한 최초의 도록입니다. 명화첩은 작품의 연대를 따라 배열되었으며 그 첫 번째 작품으로 한간의 〈말 기르는 그림〉이 수록되었습니다. 한간(8세기 활동)은 당 현종(685–762) 천보 연간(742–756)에 궁정에서 말을 잘 그리는 화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 그림에는 말을 키우는 관리 해관(奚官)이 흰 말을 타고, 검은 말을 끌며 나란히 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림 상단에는 송 휘종(1082–1135)의 제발이 있어 '한간의 진적, 정해년 어필(韓幹真蹟,丁亥御筆)'이라 쓰여 있으며, '어서(御書)'라는 표주박 모양 도장과 방형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초기 연구자인 쟝자오선(江兆申, 1925–1996)은 이 작품을 휘종대의 옛 것을 모방한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화풍과 인물, 말의 모양에서 당대 회화의 웅건하고 풍만한 특징이 드러나지만 선묘의 양식에는 송대의 필의가 배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간의 진적을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작품은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 송 황거채(黃居寀)
    자고새와 가시덤불새(山鷓棘雀圖)
    • 故畫 000039

    송 휘종(徽宗, 1082–1135)은 제목을 쓰는 제첨에 '황거채 자고새와 가시덤불새'라고 썼습니다. 황거채(약 933–993 이후)는 오대의 화조화 명가 황전(黃筌, 10세기 중엽 활동)의 아들로, 촉나라가 송에 귀속된 뒤 송 태종(939–997)의 예우를 받았으며 황씨 가문의 화조화는 송 초 화원에서 회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1977년 쟝자오선(江兆申)은 이 작품의 중심축 구도와 화법이 모두 북송의 특징을 지니며 휘종 내부에 소장되어 있었고 원래는 '선화장(宣和裝)'으로 되어있어 바로 『선화화보(宣和畫譜)』에 기록된 황거채의 〈자고새와 가시덤불새〉일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존 작품을 통한 심층적인 고찰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지니며, 이후 고궁의 송대 회화 연구를 선도하였습니다.

    본원은 1984년 10월부터 《서화 정수 특별전》을 개최하고 20건의 서화 명품을 선정하였으며 이에 대해 제한 전시 및 제한 대여를 시행하였습니다. 황거채의 〈자고새와 가시덤불새〉는 그 첫 번째 20건의 명품 중 하나로 포함되었으며 2012년에는 유물 등급 분류에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 원 예찬(倪瓚) 용슬재도(容膝齋圖)
    • 故畫 000299

    1965년국립고궁박물원은와이솽시(外雙溪)에서 개관한 이후 서화 전시에 있어 주제별 특별전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975년에 개최된 연구형 특별전 《원 사대가 편년 특별전 — 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은 편년 방식을 통해 원대 사대가의 생애와 회화 예술을 조명하였으며 원대 문인화에 대한 인식과 감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작품은 예찬(倪瓚, 1301–1374)이 72세에 그린 것으로 해당 전시의 대표작입니다. 제발(題跋)을 통해 그림이 먼저 완성된 후, 글이 더 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찬은 처음 이 그림을 벗 벽헌(檗軒)에게 선물하였고, 벽헌은 이를 3년간 소장한 뒤 다시 의사 인중(仁仲)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인중은 예찬에게 시를 덧붙여줄 것을 청하였으며 '용슬재(容膝齋)'는 바로 인중의 거처를 가리킵니다. 예찬의 산수화는 대개 '하나의 강과 두 개의 강둑' 구도로 구성되며 본 작품에서도 그러한 특색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전경의 둔덕이 화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함으로써, 빈 정자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화가 특유의 접은 띠 모양의 준법(皴法)은 고대의 형호(荊浩, 10세기 전반 활동)와 관동(關仝, 11세기경)의 화풍으로부터 변형되어 나온 것입니다.

  • 금 무원직(武元直) 적벽도(赤壁圖)
    • 故畫 000993

    이 두루마리는 비교적 큰 규모로 제작되었습니다. 본 폭의 앞부분에는 무원직(활동 시기1149–1189)이 그린 〈적벽도〉가 펼쳐지며, 북송 거장산수(巨嶂山水)의 기세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뒷부분에는 조병문(趙秉文, 1159–1232)이 쓴 〈소동파의 〈적벽사〉의 운을 따라 차운하다〉가 이어지는데, 그의 필법은 소동파(蘇東坡)와 황정견(黃庭堅)의 서풍을 따르고 있습니다. 장엄(莊嚴, 1899–1980) 선생은 본 작품에 대해, 과거 항원변(項元汴, 1525–1590)의 제기에 따라 작품명이 〈송 주예(朱銳) 적벽도〉로 알려져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후 동문 주가제(朱家濟, 1902–1969)가 『원유산집(元遺山集)』의 '조한한(趙閑閑)이 쓴 주의 적벽사에 제하다(題趙閑閑書朱赤壁詞)'라는 기록을 참고하여, 그 중 "적벽도는 무원직이 그린 것이다"라는 문구를 통해 화가가 무원직임을 밝혀냈습니다.

    • 가르단의 사망과 단질라의 귀순을 아뢰는 상주문
      부원대장군 겸 영시위내대신 비양고(費揚古)가 올린 상주문
      강희 36년 4월 9일
      • 故宮 156459
    • 『대청성조인황제 실록(大清聖祖仁皇帝實錄)』 강희 36년 4월 갑자일(甲子)
      • 故官 002086

    1996년을 기점으로 미국 청대 역사학계에서는 본원 소장 문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청대 역사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구 경향은 연구자가 직접 만주어 사료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고 내륙 아시아 지역에 대해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희 36년(1697)에 작성된 만주어 상주문인 〈가르단의 사망과 단질라의 귀순을 아뢰는 상주문〉과 옹정 연간에 편찬된 『대청 성조인황제실록(大清聖祖仁皇帝實錄)』 중 강희제(재위 1662–1722)가 오이라트 몽골의 가르단(Galdan, 1644–1697)을 정벌한 내용을 함께 소개합니다.

    두 사료를 비교해 보면, 실록에서는 가르단의 죽음을 상주문에 나타난 '병사'가 아닌,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은 마치 가르단이 강희제의 군세가 몰려오는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자결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작은 옹정제가 아버지 강희제의 업적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 것으로 그 배경에는 분명한 정치적 고려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무갈제국 참외조각 모양 잔
    • 故玉 002860

    1980년대부터 고궁의 연구원은 청나라 궁정에서 전래된 이른바 '힌두스탄' 옥기를 새롭게 검토하였습니다. 건륭제가 남긴 '힌두스탄' 옥기 관련 시를 출발점으로 삼아 힌두스탄 옥기의 정의를 재조명하고 본원 소장 이슬람 옥기를 세계 이슬람 옥기 문화의 맥락 속에서 분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이 옥기들을 통해 이슬람 세계 옥기 예술의 다채로운 전개 양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북인도 무굴 제국과 튀르키예 오스만 제국(1299–1923)의 뛰어난 공예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엄선하여 소개합니다.

  • 청 옹정 붉은 바탕에 매화와 대나무 무늬가 장식된 봄 맞이 법랑채 사발
    • 故瓷 017688

    동서의 예술이 어우러진 세련된 미감

    국립고궁박물원이 소장한 법랑채 자기는 수량과 품질 면에서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그 기원과 제작 기술, 장인을 비롯하여 분채(粉彩)·양채(洋彩)·광채(廣彩) 등과의 차이점을 탐구하고 나아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생산지를 규명하려는 등 다각적인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관심에 부응하여, 고궁박물원은 강희에서 건륭 시기에 이르는 법랑채 자기의 양식 변화를 조명하는 여러 차례의 주제전을 기획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동서의 기술과 문화가 융합되어 빚어낸 정교하고 세련된 미감을 직접 엿볼 수 있습니다.

  • 16세기 후반 코란경전
    • 購善 002968

    이 『코란경전』은 16세기 이란 사파비 왕조 시기에 제작된 중요한 필사본으로, 다마스쿠스 총독 후세인 파샤(Hüseyin Pasha)의 후원 아래 오스만 제국 황실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문은 나스크체(Naskh)로 정갈하게 필사되었으며 장과 절의 구분이 명확하고 발음을 돕기 위해 빨간색과 검은색 잉크로 발음 표기가 더해져 있어 낭송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식 양식은 '사파비 왕조의 셰라즈(Shiraz) 양식'으로 분류되며, 책의 서두에는 양쪽 면을 대칭으로 펼친 여섯 꽃잎으로 된 꽃 형태의 화려한 장식 면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도안은 금박, 청색 바탕, 정교한 꽃 넝쿨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조가 돋보입니다. 이 진귀한 작품은 2008년 본원이 남원구역 개관 준비를 위해 기획한 첫 번째 특별전 《아시아를 탐험하다: 남원(南院) 서곡》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국립고궁박물원의 소장 범위가 중화 문명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아시아 문화권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슬람 예술과 아시아 문명의 교류를 증명한 바 있습니다.

  • 신 등의 이름을 올려 『전당시집(全唐詩集)』 간행에 공헌한 인물 명단 안에 포함시켜 주심을 감사하는 상주문
    조인(曹寅)이 아룁습니다.
    강희 50년3월 10일
    • 故宮 002784

    '알았다'는 청나라 시기 붉은 글씨로 회신한 상주문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황제의 회신 문구입니다. 강희제의 군신 간 소통, 옹정제 시기의 제도적 심화, 건륭제 때의 훈령 형식의 회답에 이르기까지 정치 체제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세 글자는 상주문 정치의 축약이자 신속한 응답과 황제 권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는 청대 비밀 문서에서 나와 '짐이 알았다'라는 문구의 종이테이프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황제처럼 상주문을 검토하고 회신하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으며, 역사와 일상의 만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박물관이 유물에 동시대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