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만나다
국립고궁박물원은 개관 이래 세계와 만남을 이어왔습니다. 각지의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의 해외 전시를 통해 또한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이해와 소통이 더욱 깊어졌으며, 이는 과거와 현재, 지역과 세계를 잇는 중요한 가교가 되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고궁박물원은 의미 있는 다수의 해외 전시를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시는 고궁이 국제 무대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가 우리의 문화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상상하는지를 반영합니다. 이는 마치 시대의 거울과 같이 정치적 정체성과 문화적 관점의 변화, 그리고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상상과 실천을 비추어 줍니다. 초기의 해외 전시는 중화민국의 대외 이미지 구축과 문화 외교의 사명을 지니고 있었으며 냉전 체제 속에서 중국 예술의 고전성과 '정통성'의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하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대외 전시는 영역을 넘어 모두 함께 누리는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소장품이 인류 문명의 귀중한 유산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더 부각하고 있습니다.
- 북원구역
- 남원구역
-
-
왕자 이(匜)
- 故銅 002371
-
북송 여요 청자 '봉화(奉華)' 명 지추병(紙槌瓶)
- 故瓷 017856
-
명 15세기 선덕 연호가 새겨진 척홍 닥풀 문양 원형 쟁반
- 故漆 000143
런던 미술전 출품 유물
왕자이(王子匜), 지추병(紙槌瓶), 선덕시기 칠기는 1935년 영국 왕립 해군 함선 서포크호(HMS Suffolk)에 실려 상하이에서 런던으로 운반되어,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전시에 출품된 유물입니다. 현재도 기물의 바닥에는 당시 전시용으로 부착된 라벨이 남아 있습니다.
-
-
송 이안충(李安忠) 대나무와 비둘기 그림(竹鳩圖)
- 故畫 001257 N000000003
1962년, 《중국 고미술품 전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드영 미술관(De Young Museum)에서 순회 전시를 열었을 때, 한 여성이 거의 매일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관람하며 오랜 시간 머물렀고 그녀는 작품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전시 설치를 담당한 관계자를 특별히 집으로 초대해 자신의 소장품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부원장이었던 리린찬(李霖燦) 선생이 동행하였는데, 그녀가 기르던 희귀한 새를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림 속에 차분하고 느긋한 작은 새는 비둘기 종류가 아니라 바로 때까치였던 것입니다.
-
송 최각(崔愨) 구기자 열매와 메추라기(杞實鵪鶉)
- 故畫 001239 N000000005
1998년 국립고궁박물원의 유물이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국립미술관에서 《제국의 기억―국립고궁박물원의 진귀한 보물》특별전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프랑스 국회는 이 특별전을 위해 유물 대여에 필요한 사법적 압류 면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전시작품의 하나로 구기자 덤불 앞에 서 있는 메추라기가 땅 위의 땅강아지를 응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자연계에서 생사의 한 순간이 주는 긴장감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제발에는 '최각 구기자 열매와 메추라기'라고 쓰여 있습니다. 최각은 북송 신종(재위 1067–1085) 시기의 궁정화가 최백(崔白, 11세기)의 동생으로 역시 궁정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이 그림에는 화가의 관지나 인장이 없지만 과거 연구자들은 화면에서 농묵과 담묵, 그리고 약간의 적색으로 메추라기와 땅강아지 등을 묘사한 몰골화풍을 근거로 송대 작품으로 분류하였습니다.
-
-
청 옹정 나무 조각에 법랑을 상감한 '계급용인(戒急用忍)' 괘병(掛屏)
- 故琺 000759
-
붉은 글씨로 회답을 쓴 상주문을 공손히 반납하고 감숙으로의 인사 명령에 감사드리는 상주문
옹정 4년 8월 19일
귀주 제독 총병 마회백(馬會伯)의 상주문- 故宮 021193
2009년 열린 《옹정―청 세종 문물 대전》은 양안 고궁의 첫 공동 협력 전시로 여러 분야의 전문 역량을 모아 200여 점이 넘는 귀중한 소장 유물을 선보였으며 박물관 간 협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계급용인(戒急用忍)' 관련 유물은 특히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구절은 강희제가 옹정제에게 내린 훈계의 좌우명으로, 성급함을 경계하고 신중함을 지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옹정제는 이를 자신의 수양와 국정 운영의 핵심으로 삼아 정교한 괘병을 제작하여 늘 스스로를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붉은 글씨로 답을 쓴 상주문을 통해 대신들을 훈계하며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정신적 내면을 반영하였습니다.
-
-
원 황공망(黃公望) 부춘산에 은거하는 그림(富春山居圖)(무용사권(無用師卷))
- 故畫 001016
황공망(1269–1354)의 '무용사권' 〈부춘산에 은거하는 그림〉은 회화사에서 사의적 산수화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청 건륭 10년(1745) 고종(1711–1799)이 '자명권(子明卷)'을 얻은 뒤 이를 진적이라 인정하고 이듬해에 입수한 '무용사권'은 위작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1956년 고궁박물원 베이거우(北溝) 시기에 편찬된 『고궁서화록(故宮書畫錄)』에는 두 권이 함께 수록되었고 편집자의 주석에는 〈무용사권〉을 진적으로 명기하였습니다.
1984년 10월 본원에서 개최된 《서화 정수 특별전》에서는 20건의 한정 전시품 가운데 하나로 이 두루마리가 선정되었고, 1992년에는 확대된 60건의 전시에도 포함되었습니다. '무용사권'은 청 순치 7년(1650) 개인 소장가 오홍유(吳洪裕)가 임종 직전에 화재로 함께 불태우려 하였으나 다행히 가족이 제때에 구하여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현존 긴 두루마리의 첫 부분에는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불에 손상된 앞부분은 〈잉산도(剩山圖)〉라 불리며 현재 절강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11년 본원에서 열린 《산수의 하나 됨—황공망과 부춘산거도 특별전》에서는 이 '무용사권'과 〈잉산도〉가 나란히 함께 전시되어 관람객에게 공개되었습니다.